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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마트 계란 품절로 인한 구매 실패를 경험하고 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어지간해서는 마트에 가기 싫은데 계란 때문에 또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스트레스를 받아서 뒷목이 뻐근해졌다. 그래서 오늘 일도 안 나가니 남편과 일찍 마트에 가자고 다짐했다. 핫한 마트는 아예 제외하고 동네 마트 구실을 하는 약간 아담한 사이즈의 대형마트 체인점을 공략하기로 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찾은 곳이 No Frills이다. 오픈 시간인 9시 조금 넘어 도착했다.

 

 

Costco처럼 정원 제한을 두고 한 명이 나올 때 한 명을 들여보내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깥에서 줄을 서서 기다릴 때 조차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쇼핑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마다 화장실 휴지는 꼭 들고 있었다.

내 앞에 두 명의 백인이 줄을 섰는데, 남성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고, 여성은 겨울 장갑을 짝짝이로 끼고 있었다. 캐나다는 기침을 해도 마스크를 쓰는 문화가 아니라서 대다수의 백인이 마스크를 아직 끼지 않는다.

이 마트에서 화장실 휴지와 계란 구입에 성공했다. 마음 같아서는 각각 두 팩 사서 당분간 마트에 오고싶지 않았지만, 다음 사람을 위해 한 팩만 집어들었다. 어제 구입에 실패했던 센소다인 치약은 용량이 적은 것 밖에 없어서 두 개를 샀다.

 

다음으로 간 마트는 사실 계획하고 간 게 아니라, 산책하다가 중간에 우연히 발견해서 들어가봤다. 이 마트는 물건 평균 가격을 좀 높게 책정하는 체인이라 그런지, 입구에서 물티슈와 손 세정제를 제공하고 있었다. 체인점이기는 하지만 동네 마트 성격이 강해서 물건이 좀 있으려나 하고 들어가봤다. 이 마트에서는 타이레놀 종합감기약, 캔 콩, 참치 구입에 성공했다. 이 세 아이템 모두 오후 3시 이후에 가면 품절 가능성이 높다. 각각 두 팩씩만 사서 나왔다.

한국은 사재기 안 해서 마트에 물건이 풍성하게 남아 있는데, 유럽과 북미는 왜 그렇게 사재기를 하냐고 많이들 비교를 한다. 일단 화장실 휴지가 가장 인상적인데, 이건 여기 살다보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 비데를 안 쓰고, 건식 화장실이 대부분이고, 샤워기에 호스 없이 헤드만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환경에서는 물을 써서 뒷처리를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밴쿠버에 살면서 물티슈를 많이 쓰게 되었다. 화장실 휴지를 쓰고 그 다음에 물티슈를 써야 그나마 좀 개운하기 때문이다.

어제 뉴스 기사를 보니, 비데 설치 업자가 한 인터뷰가 눈에 띄었다. 10년간 비데 설치 의뢰가 없었는데, 지난 주에만 4건 의뢰가 들어와서 놀랐다고 한다. 의뢰인이 어디에 가도 화장실 휴지를 사기가 어려워서 비데를 설치해야 살 것 같다며 의뢰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인마트를 찾았다. 마트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도 모르게 마스크와 장갑으로 무장을 했다. 앞선 두 마트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역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백인이 많은 마트에서는 마스크를 안 하고, 한인이 많은 마트에서는 마스크를 한다. 내가 내 자신을 봐도 신기하다.

역시 한국인들은 대처가 빠르다. 모든 캐시어들이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 있고, 손님과 캐시어 사이에 가림막까지 설치했다. 이 시국에 평소보다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캐시어분들이 고맙고 미안했는데, 이렇게 가림막을 설치해서 그나마 좀 안심이 되었다.

한국은 사재기가 없는데 북미나 유럽은 왜 이렇게 사재기가 심하냐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걱정 반, 궁금한 마음 반으로 물어본다. 사실 밴쿠버는 보건부 장관이 몇 주전에 생필품을 충분히 사두라고 권고를 했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없이 그저 충분히 사두라고 하니, 사람들은 정신없이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은 사재기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순수한 사람들이다.

진정으로 사재기를 하는 사람들은, 정부 발표 이전에 많이 사두었다. 좋게 보면 똑똑한 사람들이고, 나쁘게 보면 양심 없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높은 가격에 되팔기 위해 물건을 쟁여둔 거고, 되팔기를 하다가 걸려서 인터뷰를 할 때조차, 자기 애들 학비 내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는 식으로 변명을 했다.

본인들의 애매모호한 발언 때문에 사재기가 극성을 부리자, 그제서야 보건부 장관은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어떤 품목을 얼마만큼의 수량으로 사둘 것인지에 대해서. 그 때는 이미 하루하루 확진자의 수가 급증할 때라서, 사람들은 쟁여둬야 하는 물건들에 대한 지식만 늘었을 뿐 쟁여두는 양에 대한 변화는 별로 없었다. 이건 주정부가 완전히 잘못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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